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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9 (수)

【 시사토픽Q =인물포커스·추모】 ‘영원한 재야’ 장기표 2주기…그가 마지막까지 외친 ‘특권 없는 세상’

 

데일리NGO뉴스 시사토픽Q·=뉴스팩트/ 장기표 선생 2주기 추도식 】

 

 

◆ 장녀, '9월19일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서 2주기 추도식 갖는다'
◆ 전태일 계기로 노동·민주화운동 투신…9년 옥고·12년 수배 생활해와
◆ 민주화운동 보상금 거부…“민주화운동 했다고 받는 게 말이 되나”
◆ 일곱 차례 국회의원 선거 도전 제도권 문턱 넘지 못한 ‘영원한 재야’
◆ 진보정당 창당에서 보수통합 참여까지…평생 이어간 정치개혁의 길
◆ 생애 마지막 화두 ‘국회의원 특권폐지’…불체포·면책특권 폐지 주장
◆ “물극즉반”죽음 앞에서도 대한민국 정치와 국민의 삶 걱정한 지도자

 


데일리NGO뉴스 시사토픽Q·=뉴스팩트/ 장기표 선생 2주기 추도식】‘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세상을 떠난 지 두 해를 맞아 그의 삶과 정신을 다시 기리는 자리가 마련된다.

 

고인의 장녀 장하원 씨는 최근 지인들에게 보낸 초청문을 통해 '오는 9월19일 오전 11시 경기 이천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서 장기표 선생 2주기 추도식을 개최한다'고 알렸다.

 

장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두 해의 시간이 흘렀다'며 '그동안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 뜻을 함께 이어 주신 마음에 가족은 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기표 선생은 2024년 9월22일 오전 1시35분 담낭암 투병 끝에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향년 78세로 별세했다.

 

데일리NGO뉴스도 당시 선생의 별세 소식과 함께 평생에 걸친 진정한 민주화·노동·시민운동과 생애 마지막까지 이어간 국회의원 특권폐지운동을 긴급 보도한 바 있다.

 

전태일에서 시작된 노동·민주화운동

 

 

 

194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난 장 선생은 마산공고를 졸업한 뒤 1966년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그의 인생을 크게 바꾼 사건에 대해 장 선생은 '1970년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었다'고 생전에 밝혔다.

 

이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와도 인연을 이어가며 노동운동에 참여했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과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관련 사건 등을 거치며 장 선생은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 섰다.

 

그 과정에서 약 9년을 감옥에서 보내고 12년간 수배생활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기표 선생은 민주화운동에 따른 보상금은 받지 않았다.

 

장 선생은 '민주화운동 역시 국민과 국가를 위한 자신의 역할이었다'는 소신으로 보상금 수령을 거부했다. 이 선택은 훗날 그가 '국회의원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의 특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과도 맞닿아 있다.

 

제도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영원한 재야’

 

장기표 선생은 거리와 재야에만 머물지 않았다.

 

1990년 이재오·이우재·김문수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며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시도했다.

 

이후 여러 차례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했고 대통령 선거 출마도 선언했지만 끝내 제도권 정치에 안착하지 못했고 그 때문에 그에게 따라붙은 이름이 바로 ‘영원한 재야’였다.

 

그러나 정치적 진영은 그의 최종 목적이 아니었다. 진보정당 운동을 했던 그는 훗날 보수통합 논의에도 참여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혁신통합추진위원회와 미래통합당 창당 과정에 참여했고 미래통합당 후보로 총선에도 출마했다.

 

정치적 위치가 변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장 선생이 지속해서 내세운 화두는 '기득권 정치의 개혁'이었다.

 

생애 마지막까지 붙잡았던 ‘특권폐지’

 

말년의 장기표 선생이 가장 강하게 제기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국회의원 특권'이었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과 면책특권 폐지, 정당 국고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그에게 특권폐지는 단순한 정치 구호라기보다 오랜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도달한 정치개혁론이었다.

 

권력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했던 사람이 민주화 이후에는 그 권력 자체가 새로운 특권이 되는 것을 경계했던 셈이다.

 

죽음을 앞두고도 대한민국을 걱정했다

 

장 선생은 별세 두 달여 전인 2024년 7월16일 자신의 SNS를 통해 '담낭암 말기이며 다른 장기까지 암이 전이됐다'는 사실을 직접 알렸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도 비교적 담담했다.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다”는 취지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그의 걱정은 자신보다 대한민국을 향했다.

 

'양극화와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 정치권의 극단적인 대립 등을 걱정하며 마지막까지 정치가 국민의 삶을 제대로 보살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특히 ‘물극즉반(物極則反)’, 즉 사물이 극단에 이르면 다시 반전한다는 뜻을 언급하며 우리 사회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기대했다.

 

2024년 9월22일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졌고, 같은 달 26일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안장됐다.

 

장기표 선생이 남긴 질문

 

장기표 선생의 정치적 선택과 노선에 대해서는 시대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그러나 ◀민주화운동으로 오랜 기간 옥고와 수배생활을 겪고도 그 경력을 개인적 특권으로 삼지 않으려 했다는 점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 정치권의 특권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은 그의 삶을 관통한다.

 

그가 평생 꿈꿨던 것은 특정 정당의 승리보다는 국민 개개인이 주인이 되는 사회에 가까웠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던졌던 질문은 남아 있다.

 

정치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권력은 국민을 위한 수단인가, 정치인의 특권인가.

 

오는 9월19일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서 열리는 2주기 추도식은 한 시대의 재야운동가를 추모하는 것을 넘어 장기표 선생이 평생 우리 사회에 던졌던 그 질문을 다시 돌아보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영원한 재야’ 장기표.

 

그가 떠난 지 두 해가 흘렀지만, ‘특권 없는 정치, 국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는 그의 마지막 화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은 장기표 선생의 장녀 장하원씨의 2주기 추도식 초대글 내용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故 장기표 선생의 큰딸 장하원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두 해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 뜻을 함께 이어 주신 마음에 저희 가족은 늘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아버지를 기억하고 그 뜻을 함께 나누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귀한 걸음으로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하원 올림

 

<장기표 선생 2주기 추도식>
- 9월 19일(토) 오전 11시
-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 30)

 

paulseo@dailyngonews.com